卒然의 卒은 猝과 같다. 卒이 오래된 글자, 猝이 새로운 글자로 이 두 글자와 같은 관계를 古今字(고금자) 관계라고 한다. 한문에서는 古字와 今字가 뒤섞여 나오므로 주의해야 한다. 然은 동사 뒤에 붙어 그 동사를 의태어로 만든다. 忽然(홀연) (위,괴)然(위연) 茫然(망연) 등의 然이 모두 그러하다. 惡(오)는 의문사로, 개사 乎의 목적어다. 영어에서 전치사의 목적어가 의문사일 때 목적어가 도치되듯이 한문에서도 개사의 목적어인 의문사는 개사 앞으로 나온다. 定于一의 一은 한 군주나 한 나라를 가리키되 궁극적으로는 仁政(인정)을 실행하는 군주나 그 나라를 뜻한다. 于는 乎와 마찬가지로 ‘…에’의 뜻을 나타낸다.
맹자는 “한 곳에 정해질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양양왕은 맹자가 말하는 그 ‘한 곳’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지 못했으므로 “누가 능히 통일하겠습니까”라고 다시 물었다.
孰能一之는 양양왕의 말, 對曰 이하는 맹자의 말이다. 孰能一之의 구는 주어(양양왕)는 물론이고 曰도 생략되어 있다. 앞뒤의 흐름을 보아 주어와 동사를 보충해서 풀이해야 한다. 一之의 一은 통일한다는 말이다. 한문은 품사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문장 속에서 전성되곤 한다. 一은 본래 수를 세는 수사이지만 앞에 보조동사 能이 오고 뒤에 목적어 之가 왔기 때문에 동사로 전성되었다. 之는 天下를 가리키는 지시사로 볼 수 있다.
不嗜殺人者는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란 말이다. 嗜는 甘(감)과 같아, 달게 여긴다는 뜻이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군주가 백성들을 전쟁이나 부역에 동원해서 그들이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해 춥고 배고프게 되어 결국 塗炭(도탄)에 빠지도록 만드는 일을 의미한다.
양양왕은 냉소적으로 물었다. ‘대체 그런 군주에게 누가 돌아가겠소.’ 與는 歸依(귀의) 혹은 歸附(귀부)라 할 때의 歸와 같다. 백성이 돌아가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孰能與之는 누가 그럴 수 있느냐, 누가 그럴 수 없느냐이고 행동주체의 가능성을 묻는 말이 아니다. 백성들이 귀의하는 일 자체가 있을 수 없다는 뜻을 품고 있으니 ‘能’자가 참으로 묘하다.
맹자는 앞서 ‘한 곳에 정해질 것입니다(定于一)’라 하고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능히 통일할 수 있습니다(不嗜殺人者, 能一之)’라고 했다. 이번에도 우선 간단명료하게 ‘天下莫不與也’라고 응대했다. 天下는 天下之人을 뜻한다. 莫不은 이중 부정을 통해 강하게 긍정하는 말이다. 與는 앞서와 같이 歸의 뜻이다.
이 문장에서 양해왕은 당면 현안에 궁금증이 더욱 커져 애가 탄다.
맹자의 원론적인 답에 더욱 목이 마르다.
사실은
젊은이가 인생이 답답하고 취업과 결혼 문제로 상담을 통해 해결 하고자 하는데
고매한 성현에 가까운 분은
젊은이의 능력과 현실은 관심이없고
자신을 찾아준것에 많은 이론들을 내세우며 자신의 경험(무용)담을
많은 시간을 투자해 설교을 한다.
한 분은
차나 한잔 하지,너무 걱정 말게
자네 입장을 들어보니 큰 문제가 없구먼
우선 할 수있는 일 부터 시작하고 방법을 찾아 보면 서서히 알 수 있을 것이야!
또 다른 분은
너 보아하니 때깔나는 비전을 갖춘것도 아닌데
쓸데없는 소리말고 이 일이나 해보지!
사람 마다 차이-즉 심리 행동양식이론이 거창한것 같지만
춘하추동에 벗어나는 것이 없다.
이러니 동서양의 생각이 다른것 같지만 하나다.
감정과 지배에 따라 추진형(봄)표현형(여름)안전형(가을)분석형(겨울)- 있고 맞춤식 상담도 필요한지만
퍼즐 맞추듯 해줄 수는 없는 것이다.
설령 퍼즐을 맞춘들 여불때기 곁다리로 붙여주고 활용되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초코파이 사면 끼워주는 퍼즐 이랑 우리 인생이 다르다고 어찌 장담 할것인가?
그러나 최선을 고려해 보았는지 돌이켜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