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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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談 2013. 12. 13. 00:01

맹자는 ‘천하가 한 곳에 정해질 것’이라 말하고 ‘사람 죽이기를 좋아하지 않는 자가 능히 통일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런데 양양왕이 ‘대체 그런 군주에게 누가 돌아가겠소?’라고 냉소적으로 말하자 맹자는 ‘천하 사람 가운데 돌아가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짧게 主旨(주지)를 말했다. 그러고서는 마치 長廣舌(장광설)을 늘어놓을 듯 敷衍(부연)의 말을 했다. 농사의 예를 들어 주의주장을 알기 쉽게 말한 것인데, 油然(유연)·沛然(패연)·발然(발연) 등 유사한 짜임의 의태어를 세 번이나 사용해서 언어의 묘미를 극대화했다.

知夫苗乎의 夫는 ‘저’라는 지시사로 보기도 하고, 동사의 목적어를 뒤에 이끌어오는 조사로 보기도 한다. 七八月은 周나라 달력을 기준으로 했으므로 지금 달력으로는 6, 7월에 해당한다. 旱(한)은 旱魃(한발), 槁(고)는 말라 죽음이다. 旱則苗槁矣의 則(즉)은 아래의 則과 마찬가지로 조건과 결과를 잇는 접속사인데, 조건부가 짧아서 떼지 않고 붙여서 읽는다. 孰能禦之는 누가 그 기세를 막을 것인가라는 뜻이다. 禦(어)는 制御(제어)로, 禁止(금지)의 뜻과 같다.

人牧은 牧民(목민·백성을 기름)의 군주를 말한다. 이를테면 ‘管子(관자)’의 ‘牧民’편은 군주의 도리를 논했다. ‘未有不…’은 ‘…하지 않는 것이 없다’로, 어떤 사항이 예외 없음을 나타낸다. ‘如…則…’은 가정과 결과의 문장을 만든다. 引領은 목을 늘인다는 말이다. 要領(요령)은 인체의 긴요한 부분인 허리와 목을 말하는데, 사물의 요긴하고 긴요한 줄거리란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誠如是의 誠은 부사이다. 由水之就下의 由는 猶와 같다. 沛然(패연)은 비가 쏴 하고 내리는 것을 형용하되, 앞서 거침없는 기운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했던 油然(유연), 沛然, 발然(발연)이란 말 전체를 대표한 것이다.

맹자는 양양왕에게 사람 죽이기 좋아하지 않는 자가 천하를 통일할 것이며, 사람 죽이기 좋아하지 않는 군주에게 천하 사람들이 돌아갈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고서 사람 죽이기 좋아하지 않는 군주의 나라가 興起하는 모습을 벼 싹의 예에 비유하고는 지금까지의 주장을 명료하게 정리해서 매듭지었다.

 

양해왕 입장에서는 싸움을 말리는 맹자가 더 밉지는 않을까?

전쟁을 통해 어리 저리 어더 터져 만신창이가 된 자신에게 맹자의 처방이 도움이 될까?

지금까지 동서고금에 맹자만의 유토피아가 있었는가?

인도의 유토피아 실험도시.

사실 스리 오로빈도의 꿈도, 오로빌에서 사는 오로빌리언들의 꿈도 아직 이루어지진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룰 수 없는 꿈들을 오로빌은 안고 있다. 많은 거주민이 오히려 이곳에서 각자의 경제력과, 인종, 종교의 차이를 절감한다. 그들도 사람인 탓이다. 환상을 품고 온 여행자들에게 거주민들이 오히려 냉정하게 말한다. 
“여긴 원래 그랬다. 여기에 환상을 부여한 것은 너희 같은 글쟁이와 기자들이다.”
“여기는 지금도 실험중이다. 실험실에 와서 결과물을 내놓으라고 하지 마라.”

 

즉 가상 현실인 것 뿐인것 같다.

송경이 진,초 싸움을 막으려고 두 왕에게 전쟁의 이롭지 못 한것을 설득 하겠다고 하니,

맹자는 더 들어 볼것도 없이 利로서는 불가하다고 한다.

여기서도 맹자의 독선과 협상 테이블의 귀재들이 내놓은 해결책과 동떨어진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있을때 최고로 해결이 쉽고,

상대가 원하는 것이 없을때 가장 어럽다고 하는데.

맹자는 가장하기 어려운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실험 도시을 꿈꾸는것은 아닌가?
음양의 이치 처럼

맹자의 仁義의 외침에는 앙꼬없는 찐빵이요!

인의와 관계없는 여러 책에서는 인의의 꿀이 넘처흐르드라!

즉 생활 속에 표현 절차와 방법만 다를뿐 항상 쓰이고 있는데

고정관념이 이런 다양성을 인지하지 못하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표리관계를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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