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길흉화복이 주기적으로 찾아오게 됩니다.이것을 슬기롭게 넘어가는 지혜가 필요하지요 설상가상으로 도미노처럼 업친데 덮치는 경우가 많이있습니다.이럴때일 수록 정신을 바로 하는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이 종교든 무엇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사인볼트가 척추측만증을 박지성이 평발을 선수로서는 치명적인 결함을 극복하고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의지가 노력하게 만든것이 아닌가요.현지도 차근차근 난국을
하나하나 판단하고 일을 처리하는 모습이 대견 스럽습니다.
그리고 자식에 대한 열정과 애태우는 모습이 전형적인 보모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자신의 부모에 대한 사랑이 이렇게 애절 한 부분은 글 속에는 적어 보입니다.
등장인물들에 관해서
글속에 나타나는 인물의 특성을 나름데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글에서 나온 특성을 근거로 추론한것이니 선생님의 생각과 다름이 있으면 아낌없는 조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현지 중심으로 조부는 자신의 재물을 취하기보다는 이상을 관철하는 뜻이 굳건하게 추구하나 주변의 도움세력이 부족하여 빛이 바레고있다. 조모는 남편은 행동적이라면 자신은 알아도 모르느척 때론 합리적인 보수로 더디고 생각이 많은형
아부지는 자신이 노력하고 행동하는 것보다는 과분한 결과을 가져다 주는 다복한 형
엄마는 자신의 열정은 누구보다 뒤지지않으나 늘 남편에대한 부조가 미약함을 안타까워하며 바른 지조가 남편의 행동반경에 제한을 주는형
현지는 재치와 위트을 가친 사업형보다는 지식으로 기반한 관료형
남편은 자신의열전과 노력에 비하여 늘 부족함을 느끼는 희생형
홍구는 연구 지향형
이 관점은 일관적인 인물 분석보다 자신의 입장과 위치 레벌을 고려해서 유기적으로 인물을 묘사한것으로 차이가 있고
상이한 점이 있으면 편달 부탁드립니다.
부모로서 많은 짐을 지고 주변과 더불어 하는삶을 즐기는듯 하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찡합니다.
요즘 드라마에 한지붕에 5처녀가 생활하지만 그 가족들의 속내는 알 수없는 일이지요 그래서 벌어지는 해프닝이 나중에는 휴먼으로 작용하는것처럼
이 폭풍이 지나가면 아름다운 휴먼 드라마가 되지않을까요?
저는 이름이란 것은 좋고 나쁜 것이 없고 부르기 좋고 부르기 어려운것이 있다. 이렇게 봅니다.
부르기 좋은것은 무난한 삶에 좋고 부르기 어려운것은 끝없는 도전에 좋은 이름입니다. 그리고 빨리 기억 속에 남을 수록 장점이 있습니다.
예을 몇가지들면 이승만 은 전자에 속하고 그러나 저항에 부딛치면 어려움을 면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김대중 김영삼 후자에 속하고 두분의 차이가 이름에서도 구분이 됩니다.
외국인도 마찬가지입니다.하늘을 걷는 남자
2015년 공개된 미국의 전기 영화로, 프랑스의 줄타기꾼 필리프 프티의 전기를 그린영화에서 인간의 집념과 한계가 어디까지인가 참으로 궁금합니다
전처가 일찍 돌아가시고 후처를 들였는데 많이 부족 했던 모양입니다. 하루는 제사 준비을 하고 상을 차려 놓았는데
예를 올리기 전인데 제물을 주섭주섭 집어 먹는것을 보고 주변에 제관들이 이런 법이 어디 있는가?하고 놀랄때 퇴계는 얼런 먹는것을 들고 방으로 데려 들어가 그것을 다 먹게하고 조용히 넘겼다는 것입니다. 연유는 부모님이 다시 맺어준 인연을 버리는것도 불효요.
저 부족한 여인을 내가 아니면 누가 돌 보겠는가? 참으로 대단한 일입니다.
현지의 부모 사이야 이것 보다 더 하겠습니까 마는 잘 못된 길로 접어든것을 보면
수도원에 수도사들이 원인 모게 하나둘 죽어 나가는 것을 조사하게 됐습니다.
아무리 조사을 해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도서관에 있었습니다.
그당시에는 금서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전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금서로 지정 된것입니다.
비극적이고 우울하고 힘드고 이런 서적들은 복음을 전하는데 도움이된다고 권하고 희극적이고 즐겁고 희망적인 서적들은 교리을 확장하는데 방해요소로 금서로 묶어 둔것입니다.그래서 희극책 끝에 독을 발라 두었던 것입니다. 사람의 심리가 못하게하면 더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인지라 이 책을 본사람들은 죽음을 면하기 어려었던 것입니다.이때는 침을 발라 책장을 넘겠거든요.이것을 안 조사 수도사는 도서관에 불을 질러 몇날 며칠동안 불이 껴지지않았다고 합니다.
벼룩이 잡으려 불질은 설상가사한 격이 벌어진거지요.
이런 상황이 이승원이 벌린 편협된 일과 유사하지않을까 ? 생각해봅니다.
고인의 명복을 기원 합니다.
절대자가 있으나 없으나 날이가고 달이가고
자신이 없으면 자신을 대신 할 사람이 없는것처럼 거들먹 거리지만 못하기 보다 오히려 더 잘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희노애락이 오면 그 순간순간 멈출것같고 영원할것같고 자신에게만 주어지는것 같은 착각에 빠집니다.
정신적인 지주가 없어지나 아무생각없이 하나 세상은 굴러갑니다.
이 글에서 아무리 힘든 상황이 벌어져도 일상을 늘 반복되며 단절 될 수없음을 새삼 반추해봅니다.
우리 몸이 아무리 큰 병이 들어도 호흡하고 피가 돌고 쉼이없습니다.
경제가 서브 프라임 으로 기존 질서에 변혁이 와도 돈의 흐름은 변함없이 돌고 돕니다.
이름이 좋으나 나쁘나 묘을 잘 쓰나 못쓰나 문제가 없이 삽니다.
이것은 한국,미국,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독일 일본등등등에 사는것과 같은것입니다.
엄연히 차이는 있겠지만 옳고 그르고 잘나고 못나고 차이는 아닌것입니다.그러나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은 있기 마련입니다.묘지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볼까합니다.
우선 나무에 관해서 생각해보면 모든 과일의 열매는 가지 끝에 열립니다.
인간도 다리 밑에서 주어 옵니다.
요즘 인터넷 지도가 발달되어 유명인들의 묘을 쉽게 살펴볼 수있습니다.
한국의 3대 재벌들이 백두대간 과 낙동정맥 을 죄우로 해서 중앙에 자라잡은 의령일대에서 나오게 됩니다.
묘터나 사는집이나 같은 관점입니다. 즉 도시가 산지로된 강원도 일대에 발달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모두 열매가 맺치는 이치와 같습니다.
이런것은 알고보면 상식에 볼과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가면 자신의 고정관념이 굳어가면
이런 평범한것은 씨씨하다는 오만에 빠지고 하늘에서 별을 따려는 어리석음을 범하려고 애을 씁니다.
지식은 중요하지만 실행하는것은 더욱 더 어렵습니다.
주변이 산만하고 성실하지 못할때는 모든 것을 알아도 선택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고수가 장고에 악수 나온다는 것 처럼
초 일기에 몰리면 판단에 제한을 받는것과 같습니다.
싸움을 하고나면 일상에 방해 받는것과도 같습니다.이글이 먹먹 한것은
시간과 세월을 돌이킬수 없어서 더욱 애절하고 마음이 저려오는것 같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이키고 싶지만
감사합니다.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의지야 말로 말로하기 어렵을 지경이다.
필리프 프티란 이름에서도 후자의 면이 그대로 나타난다.
전자는 허구하게 많은 것중에 하나이고 후자는 역경의 종류가 다르고 강도의 차이가 있을뿐 쟁취하는 면은 비슷하다.
감사합니다.
현지의 이런 복잡한 상황을 다니엘의 교훈에 언급했습니다.
일반 분들은 이것이 무슨 상관과계가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고 좀더 구체적인 설명이 없어 간단히 사족을 달아 보겠습니다.
기독교 발전 과정에서 다니엘의 역활과 현지의 삶에서 서울진입의 변화 과정이 큰맥락에서 비교해 볼 수있지않을까 생각해봅니다.이스라엘이 초기 모세가 황하을 건너 정착하기도 전에 바벨론과 사마리아로부터 박해를 받아 해체된상태에서
바벨론의 유화책으로 정복지의 뛰어난 인물을 인질로 잡혀온 인물중에 한사람이 다니엘인데
명석하기로 명성이 자자해 바벨론의 부흥책의 중심교육을 휼륭이 소화하고 후일을 도모하려고 열심히 매진하였다.
이 불홥리한 가운데 이스라엘의 재건을 꿈구는 것은 쉬운일이아닌데 역사는 늘 변하고 자신이 아니면 제3자가 만드는 뜸이 있을 수있으니
미리 예측을 했는지 우연인지 바라면 이루어지는지 모르지만 철웅같은 바벨론이 로마에의해 사라지게된다.
그 사이에 다니엘의 지혜가 구심점이되어 방대한 스케일로 발전하는 초석을 만들고 기독교 발전에 다니엘의 중대한 매개가없었다면 불가능하지 않았겠는가 ?
이후 로마의 박해로 정신은 더욱 강해지고
싸움과 약탈로 물들어진 피패한 유럽 정신에
수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영속성을 유지하며 꾸준히 교리을 발전하고 실천하여 최고의 정신적인 지주로 받아지게 된것이 아닌가?
현지의 개인적인 삶에서도 힘겨운 가족사를 극복하고자 서울로가는것이 다니엘의 견문을 확장하여 후일에 도움이되는것과 일맥상통하지않는가 생각해본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