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牛一毛,
漢書, 司馬遷傳第三十二,報任安書
事未易一二爲俗人言也.
僕之先人非有剖符丹書之功, 文史星曆近乎卜祝之間,
固主上所 弄, 倡優畜之, 流俗之所輕也.
假令 僕伏法受誅, 若九牛亡一毛,與螻蟻何以異 ?
저의 선친께서는 부부나 단서를 가질 만한 공로가 없습니다
천문·태사·율력과 같은 일을 담당하였는데 점치는 일과 비슷합니다
이런 일은 본래 천자께서 장난삼아 노시던 것으로 광대를 양성하는 것 같아 세상 사람들이 경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형벌에 복종하여 죽음을 받는다 하더라도
아홉 마리의 소리에서 털 하나 잃어버리는 것과 같고
땅강아지나 개미와 같은 미천한 것이 죽는 것과 다름이 무엇이겠습니까
狗尾續貂
《진서(晉書) 조왕륜전(趙王倫傳)》
【내용】삼국 시대 말기, 진(晉)나라 무제(武帝) 사마염(司馬炎)은 전국을 통일하고 진나라를 세웠다. 그는 한(漢)나라 고조(高祖)를 모방하여, 제후들을 봉하고 중앙 집권 통치를 공고히 하려 했다. 그러나 제후들의 권력다툼 등으로 내분이 발생하고 결국 팔왕지란(八王之亂)을 당하게 되었다.
진 무제의 숙부인 사마륜(司馬倫)은 사마염(司馬炎)의 조부인 위장(魏將) 사마의(司馬懿)의 아홉 째 아들로서 조왕(趙王)에 봉해졌다.
사마염이 죽자, 아들 사마충(司馬衷)이 즉위하였으니 곧 진(晉) 혜제(惠帝)였다.
이 당시 진 혜제의 부인인 가황후(賈皇后)가 정권을 장악하자, 사마륜은 대신(大臣) 손수(孫秀)와 공모하여 황후 등을 살해하고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사마륜이 즉위하자 그의 친척들과 친구들도 덩달아 벼슬을 하게 되었으며, 심지어는 종들과 심부름꾼들까지도 한 자리씩 떠맡게 되었다.
“조회가 열릴 때마다 담비 꼬리로 장식한 감투를 쓴 관리들로 넘쳐났다(每朝會 貂尾續).”라고 말했다.
당시 관원들은 담비의 꼬리가죽으로 관모(官帽)를 꾸몄는데, 벼슬아치들이 갑자기 증가하게 되자 담비의 꼬리가 모자라게 되었다.
이에 하는 수 없이 비슷한 개의 꼬리를 사용하게 되자, 백성들은 이를 몹시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다음과 같이 비꼬았다.
“담비 꼬리가 모자라니 개꼬리로 이어대는군(貂不足, 狗尾續).”
倫從兵五千人,入自端門,登太極殿,滿奮、崔隨、樂廣進璽綬於倫,乃僭即帝位,大赦,改元建始。是歲,賢良方正、直言、秀才、孝廉、良將皆不試;計吏及四方使命之在京邑者,太學生年十六以上及在學二十年,皆署吏;郡縣二千石令長赦日在職者,皆封侯;郡綱紀並為孝廉,縣綱紀為廉史。以世子荂為太子,馥為侍中、大司農、領護軍、京兆王,虔為侍中、大將軍領軍、廣平王,詡為侍中、撫軍將軍、霸城王,孫秀為侍中、中書監、驃騎將軍、儀同三司,張林等諸黨皆登卿將,並列大封。其餘同謀者咸超階越次,不可勝紀,至於奴卒斯役亦加以爵位。每朝會,貂蟬盈坐,時人為之顏曰:「貂不足,狗尾續。」而以苟且之惠取悅人情,府庫之儲不充於賜,金銀冶鑄不給於印,故有白版之侯,君子恥服其章,百姓亦知其不終矣。
즉, 조왕 사마륜의 무리가 득세하여 그 노비에 이르기까지 벼슬자리를 함부로 주다보니, 고관의 관모 장식용으로 쓰이는 담비의 꼬리가죽이 부족하여 보잘것없는 개꼬리 가죽까지 동원하여 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