除(제)’는 ‘부(언덕 부)’와 ‘余(나 여)’가 합쳐진 한자이다. 갑골문에서 ‘余’는 ‘나무가 천장을 받치고 있는 집’을 나타낸다. 이것이 나중에는 ‘집’이라는 의미로 사용됐다. 그러므로 ‘除’는 원래 ‘언덕 위에 있는 집’을 나타낸다. 일반적인 집이라면 들에 있어야 한다. 언덕 위에 있는 집은 특수한 집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堂祭(당제)를 지내는 집은 동네와 떨어져 언덕 위에 있음을 흔히 볼 수 있다.
‘除’의 초기의 의미는 ‘제단(祭壇)’이었다. 이로부터 ‘재앙을 쫓다’라는 의미가 나왔다. 이는 제단에서 행하는 모든 행위의 목적이기도 하다. ‘除授(제수)’는 ‘관직을 수여하다’라는 뜻인데, 과거에는 제단에서 관직을 수여했기 때문에 이렇게 말했다. 언덕 위의 제단으로 가는 길은 돌계단이었다. 그러므로 ‘除’에는 ‘섬돌, 길, 도로’라는 뜻이 생겼다. 제단은 항상 정결해야 했다. 이로부터 ‘除’에는 ‘깨끗이 하다’라는 의미가 나왔다.
깨끗이 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없애고 버리고 고쳐야 한다. 따라서 ‘除’에는 ‘덜다, 제거하다, 몰아내다, 고치다, 닦아내다’라는 의미가 생겨났다. ‘除草(제초)’는 ‘풀을 제거하다’라는 말이고, ‘掃除(소제)’는 ‘쓸어서 없애다’라는 말이며, ‘削除(삭제)’는 ‘깎아서 없애다’라는 말이다. ‘제거하다’라는 의미로부터 ‘가다, 떠나다’라는 의미가 생겼다. 이로부터 ‘모든 것을 떠나가게 하는 밤’을 뜻하는 ‘섣달 그믐날 밤’이라는 의미가 나왔다. 이렇게 보면 ‘除夜’의 ‘夜(밤 야)’는 꼭 필요한 말은 아니다.
‘臨淵羨魚’
는 ‘연못에 임하여 물고기를 탐내다’라는 말이 된다. 이는 곧 ‘연못에서 물고기를 탐내어 잡고자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차라리 돌아가서 그물이나 낚시를 준비하는 것이 낫다’라는 뜻
絶
열의 絶緣體는 ‘솜’이며, 전기의 絶緣體는 ‘고무’이다. ‘絶交(절교)’는 ‘교제를 끊다’라는 말이다.
‘끊다’라는 의미로부터 ‘없애다, 없어지다’라는 뜻이 생겼다. ‘絶對 ‘絶望’은 ‘희망이 없어지다’라는 말이다. ‘없애다, 없어지다’는 의미로부터 ‘더는 없다, 매우, 극에 이르다’는 뜻이 나왔다.강을 건너다. ‘絶色(절색)’은 ‘극도로 아름답다’는 뜻이다. ‘. ‘絶好’ ‘극도로 좋은 경치’라는 말이다. ‘그곳은 絶景이었다’라고 말할 때의 그곳은 정말 멋진 경치를 가진 곳이다. ‘絶唱(절창)’은 원래 ‘가장 뛰어난 시’를 뜻하는 말이었다. 그런데 고대 중국의 시는 모두 노래의 가사였기 때문에 노래를 가장 잘하는 것을 나타내기도 한다. ‘너의 노래는 絶唱이었어!’라고 말하는 경우의 ‘絶唱’은 노래를 매우 잘하는 것을 나타낸다. ‘絶頂(절정)’의 ‘頂’은 ‘꼭대기, 정상’이라는 뜻이다. ‘絶頂’은 ‘더 높은 꼭대기가 없다’는 말이 된다. 가장 높은 경지를 뜻한다. ‘더는 없다, 매우, 극에 이르다’는 뜻으로부터 ‘온 힘을 다하다’라는 뜻이 생겼다. ‘絶叫(절규)’는 ‘힘을 다하여 부르짖다,
無爲其所不爲, 無欲其所不欲’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욕심내지 말아야 할 것을 욕심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
不虞之譽, 求全之毁’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얻어지는 명예가 있고, 완전하게 하려다가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다 ‘善’은 ‘선, 착하다’라는 뜻인데 여기에서는 ‘완전함’을 나타낸다. ‘부모 자식 사이에는 완전하기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된다
權衡稱物 ‘權’은 ‘저울의 추’라는 뜻이고, ‘衡’은 ‘저울’이라는 뜻이다. ‘稱’은 ‘저울질하다, 달다’라는 뜻이고, ‘物’은 ‘물건’이라는 뜻이다. ‘權衡稱物’은 ‘저울추와 저울로 물건을 달다’라는 말이 된다. 저울추로 저울질을 하다보면, 저울추를 여러 번 이리저리 옮겨야 한다. 그러다가 마침내 무게가 적절한 곳에서 저울추가 멈추게 된다.지조가 있고, 능력이 있는 사람은 말이 장소에 따라 다르고, 행동 또한 곳에 따라 다를지라도 저울추처럼 항상 정확하고 바른 곳에서 멈출 줄 안다. 사람을 판단하기 위해서 우리는 조금 더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玆
는 흔히 ‘이, 이에’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갑골문에서는 ‘초목의 싹이 자라는 모양’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玆’는 ‘초목의 싹, 자라다’라는 이미지를 갖는다.
‘滋
‘싹이 물로 자라나는 것’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滋’의 의미는 ‘자라다, 번성하다’가 된다. 여기서 ‘번식하다’라는 의미가 나오고, ‘번식하다’에서 ‘더하다, 보태다’라는 의미가 나왔다. ‘滋養(자양)’은 원래 ‘번성하도록 길러주다’라는 뜻인데, 오늘날에는 ‘몸에 영양을 주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滋養分(자양분)’은 ‘몸을 길러주는 성분’이라는 말이다.
‘磁
’는 ‘石(돌 석)’과 ‘玆’가 합쳐진 글자이므로 ‘자라는 돌’이라는 뜻이다. ‘磁’의 의미는 ‘자석’이다. 중국의 고대인은 ‘자석’을 다른 성분이 달라붙어서 계속 자라는 모양을 취하는 광물로 봤다.
‘慈
’는 ‘心(마음 심)’과 ‘玆’가 합쳐진 글자이다. 이는 ‘마음이 자라다, 마음이 번성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고대인은 마음이 가장 번성한 상태를 사랑이라고 봤다. ‘慈’의 의미가 ‘사랑, 사랑하다’인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어머니’라는 뜻도 있는데, ‘어머니’가 ‘사랑’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慈親(자친)’은 상대방에게 자기 어머니를 일컫는 말이고, ‘慈堂(자당)’은 상대방의 어머니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흔히 말하는 ‘嚴父慈母(엄부자모)’는 ‘자식에게 엄한 아버지와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라는 말이다. 佛家(불가)에서 쓰는 ‘大慈大悲(대자대비)’는 ‘위대한 사랑, 위대한 슬픔’이라는 뜻이다.
父子之間不責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