破屋更遭連夜雨
(갱)은 다시 또는 더욱이의 뜻이며, 고치다의 뜻인 更(경)과는 구별된다.
遭(조)는 만나다 또는 당하다의 뜻이다. 遭難(조난)은 재난을 당하다의 뜻이다. 遭遇(조우)는 서로 만나다는 뜻 외에 처지나 운명을 뜻하기도 한다. 連(련)은 수레를 끌고 가는 것을 나타냈으며, 연속하다 또는 맞닿다의 뜻이다. 連夜(연야)는 밤 내내 잇다의 뜻으로, 連夜雨(연야우)는 밤이 새도록 계속 내리는 비를 가리킨다. 어려움이나 재난은 유독 하나로만 끝나지 않고 연이어 발생한다. “배에 물이 새니 또 맞바람이 친다”고도 했다. 禍不單行(화불단행)이라는 말도 있다. 재난이 발생하면 그로 인해 평상시라면 괜찮을 일이 또 다른 재난이 되기도 한다.
奢者心常貧, 儉者心常富
진정한 貧富(빈부)는 마음속의 넉넉하고 부족함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사치스러움보다는 검소함에서 마음의 부유함과 여유가 온다. 진정한 행복도 그와 같으리라
猛獸易伏, 人心難降
진나라 땅에 잡초가 무성한 것을 보면서도 무기를 자랑하고, 북망산에서 여우와 토끼의 밥이 될 터인데도 황금을 아까워한다. ‘맹수를 복종시키기는 쉬워도 사람 마음은 굴복시키기 어렵고, 산의 골짜기를 메우기는 쉬워도 사람 마음은 만족시키기 어렵다’고 하였는데, 실로 맞는 말이다.”
위의 구절은 눈앞의 것에 매달리는 사람의 욕심을 경계했다.
惟將終夜長開眼, 報答平生未展眉
開眼(개안)은 눈을 떠 잠들지 않다, 즉 잊지 않음을 의미한다.
未展眉(미전미)는 눈살을 펴지 못했다는 뜻으로, 마음이 편안하거나 기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 구절은 20세에 시집와 7년 만에 세상을 떠난 아내를 생각하며 슬퍼하는 시의 끝부분이다. 아내의 갖가지 노고와 덕을 떠올리며 회한에 젖어, 오직 날마다 밤새워 잠들지 않고 아내를 생각함으로써 보답하겠다고 다짐한다.
漱滌萬物, 牢籠百態
漱(수)는 양치질하다 또는 씻다의 뜻이다. 滌(척)도 洗滌(세척)처럼 씻다 또는 소제하거나 없애다의 뜻이다. 漱滌(수척)은 씻다의 뜻이다. 枕石漱流(침석수류)는 바위를 베고 흐르는 물에 양치질한다는 말로 은거생활을 뜻한다. 그런데 孫楚(손초)라는 이가 漱石枕流(수석침류)라고 잘못 말하고는, 이를 갈기 위해 돌로 양치질하고 귀를 씻기 위해 흐르는 물을 벤다고 둘러댔다. 그로부터 그 말도 같은 뜻이 되었다.
牢(뢰)는 가축을 가두어 기르는 우리이다. 둘러싸다의 뜻, 감옥의 뜻, 단단하다의 뜻이 있다. 제사에 쓰는 희생용 가축을 가리키기도 한다. 亡羊補牢(망양보뢰)는 양을 잃고서 우리를 고친다는 말로, 우리 속담과 유사하다.
籠(롱)은 대나무 삼태기 또는 새장이며, 包括(포괄)하다 또는 덮거나 휩싸다의 뜻이 있다. 籠城(농성)은 성문을 굳게 닫고 성을 지킨다는 뜻에서, 어떤 목적을 위해 항의의 표시로 한 장소에서 떠나지 않고 버틴다는 뜻으로 확대되었다. 籠鳥(농조)는 새장의 새로 자유롭지 못한 몸을 비유한다. 여기서의 牢籠(뇌롱)은 포괄하다 또는 망라하다의 뜻이다. 百態(백태)는 온갖 모습이다.
唐(당) 柳宗元(유종원)은 귀양지 시내를 자신에 비견하여 愚溪(우계)라고 명명하고는, 그 수면에 만물이 깨끗이 비치듯 자신도 만물을 씻어내 그 모습들을 모두 망라한다고 하였다. 문학적 자부심을 표한 말이다
推舟於陸, 勞而無功
물에 띄워야 마땅한 배를 육지에서 민다면 힘만 들 뿐이다. 바른 이치를 따르지 않아서이다. 인간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신뢰를 얻지 못하고 남을 설득하려는 것도 그와 같다
見亡知存, 見霜知氷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남는 것을 아는 것은 그렇게 되는 이치를 깨닫는 것이며, 또 남은 것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깨닫는 것이다. 서리를 보고 한겨울 얼음의 차가움을 아는 것 역시 같다. 그러려면 주의 깊은 관찰과 분석이 전제돼야 한다. 크게는 한 나라나 온 세상의 흥망성쇠를 대하면서, 그리고 어느 사회의 번영과 몰락을 대하면서, 작게는 개인의 행복을 좌우하는 몸과 마음의 건강 문제를 대하면서도 그리해야 마땅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