良弓之子, 必學爲箕
爲(위)는 굳이 구체적인 뜻의 동사가 필요 없는 상황에서 쓰는 일종의 대동사로서, 여러 의미로 대체될 수 있다. 여기서는 만들다 또는 다루다의 뜻이다. 箕(기)는 곡식 따위를 까불러서 잡것을 가려내는 키이다.
활을 잘 만들려면 나무나 대의 여러 성질을 잘 이해하고 또 능숙하고 적절히 다룰 줄 알아야 한다. 그러자면 키를 만드는 기초부터 착실히 터득해야 한다
삼국연의’에서 鷄肋(계륵)사건의 주인공인 楊修(양수)는 曹操(조조)의 심중을 속속들이 이해하면서도 결국은 그에게 벌을 받아 죽었다. 위의 구절은 그 양수의 아버지인 楊彪(양표)에게 조조가 왜 그리 말랐느냐고 물었을 때 양표가 한 대답이다. 예방하는 선견지명이 없어 부끄럽지만 그래도 자식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고 어미 소를 빌려 토로했다. 舐지 핥다 2. 빨다 犢之愛
唐(당) 權德輿(권덕여)는 “어미 소도 새끼를 핥고, 평범한 새도 새끼를 발에 쥔다”고 했다. 그처럼 부모의 자식 사랑은 천성에 의한 것이며 가장 진실하고 절실하다
花徑不曾緣客掃, 蓬門今始爲君開
客至
杜甫
舍南舍北皆春水 “집 남쪽과 북쪽이 온통 봄 강물인데
但見群鷗日日來 보이는 건 단지 날마다 오는 갈매기 떼이지요
花徑不曾緣客掃 꽃길 일찍이 손님 맞느라 쓸어본 적 없다가
蓬門今始為君開 쑥대 문 오늘 처음 그대 위해 열었습니다
盤飧市遠無兼味 음식은 시장이 멀어 변변치 못하고
樽酒家貧只舊醅 술은 가난해서 묵고 거친 것뿐입니다
肯與鄰翁相對飲 이웃 노인과 같이 마셔도 좋으시다면
隔籬呼取盡餘杯 울타리 너머 소리쳐 불러내 남은 술을 비웁시다.”
누추한 집에 차린 것은 없지만 처음 맞은 손님과의 술자리가 편안하다. 울타리 너머 이웃을 불러 같이 마시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에, 다정하고 여유로운 주인의 모습이 역력하다.
水所以載舟, 亦所以覆舟
滿載而歸(만재이귀)는 가득 싣고 돌아가다의 뜻으로 수확이 많음을 의미한다. 또 年(년)과 통하며 해를 뜻한다. 千載一遇(천재일우)는 천 년에 한 번 만날 만큼 매우 드물다는 뜻이다.
覆(복)은 顚覆(전복)이나 번覆(번복)처럼 뒤집거나 뒤집히다의 뜻, 망치거나 망하다의 뜻,
覆蓋(부개)는 덮다 또는 뚜껑의 뜻인데, 보통 ‘복개’로 통용되며 覆蓋川(복개천)처럼 쓰인다.
물은 배를 띄우는 것이지만 뒤집어 가라앉히는 것이기도 하다. 각기 국민과 군주에 비유하여 이른 말이다.
巢居者先知風, 穴處者先知雨
巢窟(소굴)은 새의 둥지와 짐승의 굴이다. 머물러 사는 곳 또는 도둑이나 악한의 근거지를 뜻한다.棲息(서식)하다의 뜻이다 巢林一枝(소림일지)는 새가 숲에 둥지를 트는 데는 가지 하나면 된다는 뜻으로 분수를 지켜 욕심내지 않음을 비유한다.
穴居野處(혈거야처)는 굴속이나 한데서 산다는 뜻이다. 居(거)와 處(처)는 짝을 이루며 모두 거주하다.
나뭇가지에 둥지를 트는 새는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러니 바람에 민감하여 누구보다도 일찍 감지해 적절히 대처한다. 동굴에 사는 짐승이 비에 민감한 것도 같은 이치이다. 그처럼 환경에 따라 감지능력이나 대처능력도 다를 수밖에 없다.
筍借一風爭作竹
筍(순)은 대의 싹인 竹筍(죽순) 또는 대의 푸른 껍질이다. 石筍(석순)처럼 죽순 모양의 것도 가리킨다. 筍席(순석)은 연한 대의 껍질로 만든 자리이고, 筍輿(순여) 또는 竹輿(죽여)는 대로 엮어 만든 뚜껑 없는 가마다.
借(차)는 빌리다의 뜻이다. 借劍(차검)은 신하가 군주의 노여움을 사면서까지 직간하여 간신의 제거를 청하는 것을 비유한다. 借箸(차저)는 漢(한)의 張良(장량)이 밥 먹던 왕의 젓가락을 빌려 당시의 형세를 그려 보이며 정책을 논한 데서 유래한 말로, 남을 위해 계책을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借風使船(차풍사선)은 바람을 빌려 배를 부리다, 즉 정세나 상황을 따르다의 뜻이다.
여름이 시작될 즈음이면 대의 싹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심지어 바람이 불 때마다(一風爭) 자라는 듯 빠르게 자라 숲을 이룬다. 또 ‘제비는 새끼들이 나뉘어 따로 둥지를 튼다’는 말도 있다. 그렇게 새로운 생명체가 왕성하게 자라나 세대교체를 이룬다
夏蟲不可與語寒, 篤於時也
篤(독)은 敦篤(돈독)이나 篤實(독실)처럼 도탑다 또는 성실하거나 마음 씀이 두텁다는 뜻이다. 專一(전일)하다는 뜻과 危篤(위독)처럼 병세가 위중하다는 뜻도 있다. 본뜻은 말이 느리게 걷는 것이다. 여기서는 어느 하나에 한정됨을 뜻한다. 於(어)는 피동태에 관여하며 ‘∼에 의해’에 해당한다.
여름 한 철에만 사는 벌레에게 겨울의 추위를 일러준들 그 벌레가 이해할 수 없다. 그렇듯 인류의 지식도 세속에 구속되고 또 그 안의 가르침에 묶이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혹자는 모든 인위적인 것을 부정하고 자연에 따르라며 無爲自然(무위자연)을 주장한다.
지극히 제한적이고 편벽된 것이어도 인간이면 그 인위적인 기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렇지만 자연의 작은 일부라는 입장에서 살피면 제 참모습을 좀 더 잘 알 수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