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이 짐을 지게 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은 나 자신이다. 죽은 뒤에야 내려놓을 이 지독한 임무를 내 스스로 떠맡고 있는 것이다.
興於詩하며 立於禮하며 成於樂이니라
논어’ ‘泰伯(태백)’의 이 장에서 공자는 詩, 禮, 樂의 단계별 학습과 효용에 대해 말했다.
禮와 樂은 상보적이다. 禮 가운데 樂이 있고 樂 가운데 禮가 있다
民可使由之요 不可使知之니라
공자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논어’ ‘泰伯(태백)’의 이 章을 근거로 공자가 우민정치를 지지했다고 말한다. 공자는 道德(도덕)과 命令(명령)과 政敎(정교)로 백성을 인솔할 수는 있어도 백성에게 일일이 이유를 알리기 어렵다는 현실 상황을 말한 것이다. 공자는 衛(위)나라로 갈 때 염유(염有)의 질문에 답하여, 민중이 많아지게 하고 국민을 부유하게 하며 그들을 가르치는 일이 포부라고 말했다. 북송의 정자(程子)는 “백성에게 일일이 알게 할 수 없기에 그들로 하여금 따라 나가게 할 뿐이다. 백성이 알지 못하게 한다면 朝四暮三의 술수이다”라고 풀이했다.
후한의 학자는 民에 어두울 冥(명)의 뜻이 있어 民은 무식한 대중을 가리킨다고 했다. 하지만 民은 士와 구별되는 일반인을 가리킨다. 使는 ∼에게 ∼하게 한다는 짜임을 만든다. 由는 準據(준거)로 삼아 나아간다는 뜻이다. 쓸 용(用)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之는 도덕 명령 정교를 암시한다. 不可는 ‘∼을 할 수 없다’이지 ‘∼해서는 안 된다’가 아니다.
정약용은 이렇게 풀이했다. “공자는 교육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는 有敎無類(유교무류)를 말했거늘, 어찌 백성이 알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겠는가? 성인의 마음은 공정하므로 맹자는 ‘모든 사람이 요순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사욕을 채우려고 백성들을 어리석게 만들어 사람마다 요순이 되는 길을 막아야 되겠는가?”
환무용(宦懋庸)이란 학자는 원문을 ‘民可, 使由之. 不可, 使知之’로 끊고, “世論(세론)이 좋다고 하면 함께 따라 나가고 세론이 불가하다고 하면 이해시킨다”로 풀이했다. 포퓰리즘의 해석이므로 정약용의 풀이만 못하다. 정약용은 덧붙였다. 백성들을 어리석게 하여 스스로의 왕위를 굳히려 한다면 머지않아 그 나라는 멸망하게 되리라고
다양한 방법으로 표출하지만
모든 분들은 이렇게 본다.
멍석을 깔아 주면 못놀다.
가르쳐는 주어도 (알고 모르고는 자신들의 탓이지.)내가 알수있게 할 수있는것은 아니다.
제시 지내라고 멍석을 깔아주었는데 ,잠을 자야할지,술판을 벌여야할지,모르드라
백성이 도에 관해 충분히 듣고도 잘 알아서 쓸줄 모른다.(도를 설명해도 실천하지 못하더라)
백성에게 도리을 가르쳐도 알아서 행하게 할 수는 없더라(모두 백점을 원하지만 1%도 안되듯)
백성이 국가 시책을 전달받지만 (미치지 못해서,몽매해서,다른 의미로 등등)뜻을 알아듣지 못한다.
주체는 백성이고 앞뒤 사역도 백성이고 앞뒤 之도 같은 지대로 보면 문맥으 흐름을 다른 곳으로 볼 수없다. 오직 백성이 당하고 백성이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는 일반적인 생각이고 좋을 뜻하다.
능동적으로 국가,성현,공자기타등등이 뭘 시켜도 알게 할 수는 없다.
즉 요리은 해줘도 (먹으면 뿐이지,방법을 알려줘도만들어 먹지 못하더라)
해서 먹게 할 수없더라.
프로젝트로 돈을 풀면 알아서 분배되지,이상향인 일정한 공동분배는 하기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