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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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談 2013. 7. 11. 23:32

晉文公은 譎而不正하고 齊桓公은 正而不譎이니라

晉나라 文公과 齊나라 桓公은 모두 춘추시대의 覇者(패자)이다. 그들은 諸侯(제후)들이 동맹할 때 盟主(맹주)가 되고 주나라 왕실을 도와 천하를 안정시켰다. 공자는 두 사람을 비교하여 문공은 謀略(모략)이 많았던 반면에 환공은 正道를 밟았다고 논평했다.

환공은 楚(초)나라를 칠 때 의리를 따르고 속임수를 쓰지 않았으나 문공은 衛(위)나라를 치면서 초나라를 빼앗아 음모로 승리한 차이가 있다고 했다

제나라 환공은 형 公子糾(공자규)와 싸워 이긴 후 제나라 군주가 되어 管仲(관중)을 재상으로 삼아 國威(국위)를 떨쳤다. 진나라 문공 重耳(중이)는 내란을 피해 19년간이나 망명해 있다가 본국으로 돌아가 즉위한 후 城복(성복)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國勢(국세)를 펼쳤다. 그런데 환공은 천자의 명령을 공손하게 받들었으나 문공은 당돌하게 천자의 의례인 墓道(묘도) 제도를 청했다. 또 환공은 管仲과 원수였지만 그를 사면하고 등용했으나 문공은 狐偃(호언)의 은혜를 입고도 그를 내쳤다. 이 사실들만 보아도 환공과 문공은 사람됨이 달랐다. 현실 정치와 국제 정세를 바라보는 공자의 시선은 늘 냉철하다. 냉철한 시선을 우리는 배워야 하리라.

맹자는 “仲尼(중니·공자)의 무리는 제나라 환공과 진나라 문공의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공자는 당대에 환공과 관중에 많은 관심을 나타낸다.

하은주 삼대의 성현들은 들어서 문언을 통하여 배운것이고

당대의 패자중에 가장 선호하는 편이다.

많은 문헌 중에서 당대 인물을 칭잔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여기서 공자의 인품이 자신의 소신을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객관적인 표현이 휼륭하다.

이런 측면에서라도 앞으로 환공과 관중이 다시 조명 될것이 말 할것도 없다.

이런 논제의 진부(공자의 호평,맹자의 폄하)는 미래에  더 조명을  받는지가 분명히 결정될것이다.

환공과 관중의 일대기을 잘 조명해보면 인간으로서 일어 날 수있는 일은 거의 모두 간접 경험 할 수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닌듯하다.

현대에서 패자가 할 일 후반부에 경계해야 할 일을 제시하고 있다.

시대적인 생각의 차이가

제나라 패자정도는 현대 지구와 묻별들과의 관계서 지구을 하나의 국가로 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즉 경제,환과고숙을 다스고 전쟁을 하지않고 화합하여 백성의 안녕을 추구하듯이,지구의 패자는 지구촌의 굼주림을 해결하고 나아가 넘치는 인력의 생존의 투쟁장이아닌 새로운 역사의 장에 쓰여 진다면 내일 죽는다고 한들 후회하겠는가?

우리는 패자를 꿈꾸고 어떤방법으로 준비하고 있는가?

패자란 단어를 엿 같이 생각하고,줘도 안한다면 할 수없고,

기존에 얽매여서는 불가능 하다는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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