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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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談 2013. 7. 12. 21:53

 

 

 

 

 

춘추시대 제나라는 襄公(양공) 때 정치가 혼란했다. 鮑叔牙(포숙아)는 公子인 小白을 모시고 거(거) 나라로 망명했다. 소백은 양공의 이복동생, 포숙아는 그의 傅(부)였다. 이 무렵 公孫無知(공손무지)가 양공을 살해하자 管仲과 召忽은 公子인 糾를 모시고 魯(노) 나라로 망명했다. 규는 소홀의 이복동생 혹은 이복형이라고 한다. 소백과 규는 각각 제나라로 먼저 들어가려고 싸웠는데, 소백이 이겨 제나라 군주가 되었다. 이 사람이 환공이다.

환공은 노나라 莊公(장공)에게 압력을 가해 규를 죽이게 했다. 소홀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위의 ‘召忽死之’는 ‘그를 따라 죽었다’이다. 하지만 관중은 죽지 않았을 뿐 아니라, 포숙아의 추천으로 환공의 신하가 되어 재상에까지 올랐다. 기원전 685년의 일이다. 자로는 이 일을 거론하고 ‘曰不仁乎’라고 했다. ‘어질지 못하다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는 뜻이다.

니체는 과거를 이야기하는 방식에

기념비적 역사,

골동품적 역사,

 비판적 역사의 셋이 있다고 했다.

공자의 문하에서는 과거 사실에서 현재적 의미를 생산해내는 비판적 역사를 공부했다.

우리가 고전과 역사를 공부하는 방식도 그러해야 하리라.
 鮑叔牙에 관하여

누구보다 높이 평가 하고 싶은데.

저평가된 이유는 무엇일까?

 

九合을 주자는 糾合(규합)으로 보았다. 糾는 督責(독책)의 督과 통하며, 주나라 천자를 존경해야 할 책임을 따진다는 뜻이다. 옛 주석은 九를 아홉의 횟수로 보았다. 그런데 ‘사기’에 보면 환공이 ‘寡人(과인)은 兵車로 모인 것이 세 번, 乘車(승거)로 모인 것이 여섯 번이었다’고 했으나 ‘管子(관자)’에서는 ‘兵車로 모인 것이 여섯 번, 乘車로 모인 것이 세 번이었다’고 했다. 병거로 모임은 무력의 시위, 승거로 모임은 평화의 회합을 가리킨다. ‘춘추곡량전’에서는 노나라 莊公(장공) 27년에 제후들이 衣裳(의상)으로 모인 것이 열한 번, 兵車로 모인 것이 네 번이라 했다. 문헌마다 다르므로 九를 횟수로 보기는 어렵다.
구합은 많이 병합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管仲之力의 力은 功績(공적)이란 뜻이다. 국가 사이의 평화스러운 회합을 衣裳之會(의상지회)라고 하는데, 관중의 공적은 무력 시위가 아니라 의상지회를 이루어낸 데 있다. 如其仁은 ‘누가 그 어짊만 하겠는가’라고 하여, 관중의 어짊을 칭송한 말이다. 단, 군주를 위해 殉死한 召忽(소홀)의 절의와 관중의 공적을 비교해서, ‘소홀이 어찌 관중의 어짊에 미칠 것인가’라고 풀이하거나 ‘관중이 소홀의 어짊과 같도다’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공자는 관중이 仁者(인자)는 아니지만 백성에게 利澤(이택)을 끼쳤기에 仁의 공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남에게 이택을 끼치지 못하면서 절의의 이념만 고수하는 행위는 그리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할 듯하다.
이말은 관중과 맹자의 차이점을 확연히 하는것이 아니겠는가?

맹자는 “仲尼(중니·공자)의 무리는 제나라 환공과 진나라 문공의 일을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왜 이런 실수를 한 이유가 무었일까? 의도적 이라면 지고한 뜻이 있을까?

 

溝瀆之諒(구독지량)이라 하면 사소한 信義를 뜻한다. 諒은 작은 일에 구애되는 성실함이다. 이 성어는 ‘논어’의 ‘憲問(헌문)’에서 공자가 管仲(관중)의 업적을 평가한 말에 나온다.

子路가 管仲이 殉死(순사)하지 않은 점을 두고 어질지 못하지 않느냐고 질문했을 때, 공자는 관중에게 衣裳之會(의상지회)를 이루어낸 功績(공적)이 있다고 환기시켰다. 子貢도 같은 질문을 했다. “관중은 仁者가 아니지 않습니까. 桓公이 公子糾(공자규)를 살해할 때 죽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환공을 돕기까지 했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관중의 一匡天下(일광천하)는 溝瀆之諒의 기준으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匡은 正과 같은데, 여기선 천자의 권위를 바로 세운 것을 가리킨다.

相은 돕다, 覇諸侯는 제후들의 盟主(맹주)가 됨이다. 于今은 至今, 微는 無와 같다. 吾其被髮左임矣에서 吾는 우리들, 其는 아마, 被髮左임은 머리를 묶지 않고 옷섶을 왼편으로 여미는 이민족의 풍속을 가리킨다. 豈若∼은 ‘어찌∼과 같으랴’이다. 匹夫匹婦는 부유하지도 고귀하지도 않은 一夫一婦다. 당시 귀족과 부호는 一夫多婦의 풍습이었다. 經은 목매단다는 말이다. 莫之知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義理에 부합하지 않는 節義는 溝瀆之諒일 따름이다.

 

이글은 관중이 변절하고자 한것(개 죽음당하는것)보다 후일 뜻을 펼치고자하는것이 현명하다는 취지다.

후대에 사마천이 자신의 죽음은 구우일모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고 궁형으로 사기저술한것,

손빈과 방연사이의 처참한 일화,

한신의 가랭이 기어들어간 일화

이들 모두 공통점은 친구사이의 벌어진 과 아랑한 자존심을 버리고 자신의 방법으로 큰 일을 도모하여

성취한 것이다.

이런 것을 강조하기 위한 문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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