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한문

131

土談 2013. 7. 14. 00:18

公叔文子는 衛(위)나라 대부 公叔拔(공숙발)인데 죽은 뒤 군주에게서 ‘文’의 諡號(시호)를 받았다. ‘예기’에 보면 공숙문자가 죽자 아들이 군주에게 시호를 청했다. 위나라 군주는 “이분은 우리 조정의 일을 볼 때 職制(직제)를 정비하고 이웃나라와 교유할 때 우리 社稷(사직)에 욕을 끼치지 않았으니 文의 덕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분을 貞惠文子(정혜문자)로 하라”고 했다. 文은 도리에 부합해서 아름다운 덕을 이룬 것을 말한다.
옛 사람은 공숙문자가 자기의 가신을 조정에 천거해서 자기와 함께 국정을 돕도록 한 일을 두고, 사람을 알아보고 자기를 잊은 데다 군주를 제대로 섬기는 三善(삼선)을 실천했다고 평했다. 사람은 대개 자존심이 강해서 後進(후진)이 자기보다 功名(공명)을 이루는 일을 두려워하고 자기 재능과 비슷한 무리와 同列(동렬)에 서기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집단이 발전하려면 윗사람이 남의 재덕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心好才德(심호재덕)의 자세, 거칠고 더러운 것까지 감쌀 정도로 남을 포용하는 包荒(포황)의 태도를 지녀야 하리라.

이글에서 고려때 을 비룻하여 조선에도 문이란 시호을 받은분이 있지요.

이규보의 다양한 생활에 살아있는 생각들이 녹그릇 문질내는데 쓰는것 보다 높이 평가되어 진정한 문의 시호을 받아도 부족함이 없는것이 아닌가?

앞장에서는 서로간에 불운한 일화인 반면에

이것은 서로 상생하는 모습을 공자는 칭찬했다.

안연이 마부을 대부로 천거한것 처럼.

'취미 > 한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133  (0) 2013.07.16
132  (1) 2013.07.15
130  (0) 2013.07.12
129  (0) 2013.07.11
128  (0) 2013.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