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斯而已乎는 ‘이와 같을 뿐입니까’라고 되묻는 말이다. 修己以安百姓의 以는 而와 같은 연결사, 安百姓은 천하의 인민을 편안하게 하는 일이다. 病諸는 이것을 부족하다고 여긴다는 뜻으로, 하기 어려워서 스스로 부족하다고 반성했다는 말이다. 諸는 之와 乎의 合音字(합음자), 其猶∼乎는 추측의 뜻을 나타내는 문형이다.‘대학’에서 말하듯이 인격주체의 자기 수양은 그 자체로 완결되지 않는다. 몸을 닦아 공경하는 誠意(성의)와 正心(정심), 몸을 닦아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修身(수신)과 齊家(제가), 백성을 편안하게 만드는 治國(치국)과 平天下(평천하)가 동심원을 그리면서 확장된다.
이런 말이 이해가 잘안되면
소규모 모임 즉 노희사비공우경 칠정을 격고,회장도 하고 싶은 사람이하고,힘들고 어려우면 못 도와주어 안타까워허고,먹을것 있으면 같이 하고 싶고,서로 격식과 눈치 볼필요 없는 곳이다.
선거에 의한 단체
소규모와 반대 현상,남이 잘되면 배 아푸고,남의 실수는 나의행운,상하 차등 계급이 존재하고
이권이 있으면 속으론 이합집산 겉으론 이타정신으로 불편한 진실이 있는곳이다.
이것을 확장하여 비교 설명해보면
소규모는 요순의 근간이요
선거에 의한 단체는 성현과는 요원한 것이다.
그러나 엄마 아부지는 건강에 신경써도 인정못받고
의사는 어떤 경우든 믿고
이또한 위와 표리관계가 있다.
그러니 한가지만 옳고 다른것은 그르다는 관념에서 벗어나는것이
현실을 바로 보는 지름길이다.
표리관계을 즉 음양의 이치을 어떻게 활용하는냐?가 관건이다.
성현의 정치에 추상적인 그리움을 막연히 바라는것과 현실적인 정치는 추하고 흙탕인것
이런 이분법적인 관념을 고취하는것보다 표리 음양의 조화를 맞추는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묘색하는 가르침이 배운것을 써먹으라는 진정한 뜻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