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는 작은 신의에 얽매이지 않는 법이라고 했다. 어째서인가? 군자는 올바른 도리에 대해서는 굳게 지켜 흔들림이 없어야 하지만 是非曲直(시비곡직)을 따지지 않고 그저 처음 뜻을 관철하려고 고집해서는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貞은 바르고도 굳다는 말로, 節操(절조)가 굳음을 가리킨다. 諒은 작은 믿음, 융통성 없는 고집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諒은 아량이 좁고 판단을 잘못하여 일시적인 서러움이나 격렬한 감정 때문에 작은 의리를 지키는 것을 가리킨다. 尾生抱橋(미생포교) 즉 尾生之信의 고사는 그 예다.
군자는 仁해야하고 인은 정도요 정도는 바름의 실행이다.머 있다고 코빵구나뀌고,머 있다고 침밷는 류는 정도와는 거리가 멀다.
有敎無類’는 가르침에 차별을 두지 않으려는 평등교육의 이상을 담았다.
無類는 身分이나 氣習의 高下를 따지지 않았다는 뜻으로 풀이하면 좋을 것이다.
196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의 이데올로그였던 趙紀彬(조기빈)은 有敎無類를 ‘疆域(강역) 내의 民을 모두 동원하지, 族姓(족성)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有는 ‘域’으로 볼 수 있지만 有敎를 ‘域敎’로 볼 근거는 없다. 또 조기빈은 誨(회)란 글자만 ‘가르친다’의 뜻이라고 했지만 敎는 敎令을 반포해서 敎化한다는 말로도 쓰였으므로 그것에서부터 ‘가르친다’의 뜻으로 轉化(전화)할 수 있었다
敎정형화 된것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가르침
誨무형화 된것을 스스로 깨우치는 가르침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있는데
가치관,사상,종교의 차이보다 不,正의 관점에서 접근하는것이 좋을것이다.
그러나 이 말이 실용성이 있는것인가?
위의 3문장에서
도의 가르침은 정,무류,상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