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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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談 2013. 9. 26. 23:30

接輿는 공자와 같은 시대인 초나라 昭王(소왕) 때 혼란한 정치현실을 보고 거짓으로 미친 척하고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이름이 陸通(육통)이었다고도 한다. 공자와 접여의 이야기는 ‘장자’에도 나온다.

過孔子는 공자가 머물던 객사의 문 앞을 지나갔다는 말이다. 鳳은 봉황의 수컷이고, 암컷은 凰(황)이다. 접여는 공자를 鳳에 비유하여, 공자가 덕이 쇠하여서 은둔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兮는 감탄의 뜻을 나타내는 어조사다. 往者는 過去, 來者는 將來다. 不可諫은 간하여 말릴 수 없다, 탓할 수 없다는 뜻이다. 可追는 뒤쫓을 수 있다, 고칠 수 있다는 뜻이다. 已而의 已는 止와 같고, 而는 어조사다. 殆而의 而도 어조사다. 從政者는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공자는 隱者(은자)의 처지에 공감하면서도 스스로는 당시의 정치현실을 바로잡으려는 뜻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陶淵明(도연명)도 ‘歸去來辭(귀거래사)’에서 ‘이미 지나간 일은 간하여 말릴 수 없음을 깨달았고, 앞으로의 일은 미칠 수도 있음을 알았네(悟已往之不諫 知來者之可追)’라고 했다.

 

공자의 수레 앞을 지나면서 노래를 불렀거나, 공자가 묵던 곳의 문 앞을 지나면서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공자는 수레나 堂(당)에서 내려와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다. 하지만 접여가 빠른 걸음으로 피했기 때문에, 끝내 대화를 나눌 수 없었다. 공자가 접여와 이야기를 나누려 한 것은 어떤 심경에서 그랬을까?

공자는 齊나라에서 뜻을 펴지 못하고 景公이 죽은 다음 해부터, 楚(초)로 향하였다가 蔡(채)로 돌아오고 또 葉(섭)으로 떠났다가 다시 蔡로 돌아오는 등 한 곳에 정착하지 못했는데 그 무렵에 은자인 長沮(장저)와 桀溺(걸닉)을 만난 듯하다.
우而耕은 쟁기로 두 사람이 함께 밭을 가는 것을 말한다. 夫는 3인칭의 ‘저’다. 執輿者는 마차 고삐를 쥔 사람이란 말이다. 수레를 몰던 子路가 나루를 물으러 간 사이에 공자가 대신 고삐를 쥐고 있었다. 知津이란 공자가 천하를 周流(주류)하여 스스로 나루를 알 것이란 말인데 無道한 세상을 구원하려고 轍環天下(철환천하)하는 것에 대해 비판한 것이다.

滔滔(도도)는 물이 콸콸 흐르듯 천하가 혼란한 모습니다. 皆是也의 是는 滔滔를 가리킨다. 誰以는 ‘누구와 함께’로, 以는 與와 같다. 易은 變易(변역)이다. 걸닉은 공자가 누구와 함께 난세를 바꾸려 하는가라고 조롱한 것이다. 且而의 而는 2인칭의 余와 같다. ‘與其∼豈若∼’은 둘을 비교하면서 후자를 긍정하는 어법이다. (벽,피)은 避의 옛 글자다. (벽,피)人之士란 함께 도를 행할 사람이 아니면 그 사람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가는 선비란 뜻으로 공자를 가리킨다.
. (벽,피)世之士란 난세를 피해 은둔한 걸닉 자신이다. 우는 씨 뿌리고 흙 덮는 일이다. 輟은 止와 같다

憮然(무연)은 失意한 모습, 혹은 창然(창연)과 마찬가지로 서글퍼하는 모습이다. 與同群은 새 짐승과 한 무리를 이루어 산다는 말이니, 산림에 隱遁(은둔)함을 뜻한다. 斯人之徒는 천하의 민중을 가리킨다. 易은 變易이니, 세상을 正道로써 바꾸는 것을 가리킨다.

 

위의 문장들은 공자와 은자(도가류)의 서로의 이해하고 상통하는 점이 넘치는 되도 불구하고

당사자들은 반목질시하는 마음이 앞서니 두 부류의 쑈를 주역의 관점에서 보니 안타까울뿐이다.

공자가 은자을 보는 관점보다 은자가 공자에 대한 애정이 더 넘치는것 같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사계의 미묘한 변화를 노래한것은 똑  같다.

이런 측면에서는 두 부류가 등잔불이 어두운 우를 범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므로 서로의 소통하는 관점을 보는 대인적인 관점이 그립다.

말로만 하는 대동이 아닌가?

차라리 이런 말이 없었으면 좋을껄.

현재 우리가 사는 사회는 하나같지만

이들 보다 골이 더깁고 깁어 불통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은자 ,여기에 은자는 현실을 너무 정확하게 인지하고 행동하고 있다.

이 것이 어디 은자인가?

요즘  불통하는 부류들은 현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행동할까?

그러므로 서로 소통하는 관점을 공자와 은자에게서 배워야지!

자꾸 모자라게 이단시하게 이간질하는 것은 없어져야지.

사계의 미묘한 변화(왕권의 변화-새로운 세계을 만들어가는것) 

공자의 이상만이 세상을 바르게 바꾸는가?

은자의 무관여가 세상을 바꾸는가?

둘이서 발버둥쳐야 세상이 바뀌는가?

아니 둘이 없어도 세상은 굴러가고 변한다.

 

왕이여! 왕이여!

어찌 얼빵하여 공자와 은자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가?

왜 나만 가꼬 그래!

내가 바로하든 발광을 하든 뒤지면 변하게 되는데 무엇을 사서 걱정하는가!

어디..... 전전전후후후후...대에 마음에 평화를 가져다 준 왕 있느가!

두 분의 가륵한 마음이 나의 빛과 그림자인 것을

이을 갈라 놓으려는 너희들이

얼빵하기 보다 치졸해 보여!

쓰임을 모르는 것이여!

 

동전의 양면이 있어야

눈깔 사탕이라도 사 먹지!

자신의 대에 동전만 돈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지!

형태가 달라도

현재의 쓰임이 있는것이여!

똥통에 빠지든 술독에 빠지든 빠찡고에 빠지든 나의 주머니에 빠지든

똑 같은 돈이여!

그런데 자신의 주머니에 동전만 돈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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