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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土談 2013. 10. 6. 22:45

子夏의 門人이 子張에게 벗 사귀는 문제를 물었을 때 자장은 “자하는 무어라 하더냐”고 되물었다. 자하의 문인이 “자하는 사귀어도 좋은 사람은 사귀고 사귀지 말아야 할 사람은 거절하라고 하셨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자장은 선생님께 들은 바와 다르다고 하면서 위와 같이 말했다. 내 편에서 남을 거절한다면 너무 박절하며 나는 오로지 포용력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하였으니 공자가 汎愛衆而親仁(범애중이친인)하라고 했던 가르침을 부연했다고 할 수 있다.
尊賢은 有德한 분을 존경함이다. 容衆은 사람을 두루 포용함이다. 嘉善은 취할 만한 善한 면이 있다면 추어준다는 뜻이다. 矜은 동정함이다. 我之大賢與는 ‘내가 크게 어질다면’이라는 가설의 말이다. 何所不容은 용납하지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라는 뜻이다. 我之不賢與는 ‘내가 어질지 못하다면’이라는 가설의 말이다. 如之何는 어떻게 혹은 어찌하랴는 뜻으로 之는 어조를 조절한다.
자하와 자장의 관점 차이가

사물을 보고 배우고 활용하는 미시적,거시적인 접근 방법을 설명하고자 하는것이 아니겠는가?

 

子夏의 말을 채록했다. 당시 젊은이 가운데는 인륜의 도리를 닦아 원대한 이상을 실현하려고 하기보다 小道에 빠져 있는 이가 많았으므로 자하는 그 폐해를 경고한 듯하다.

주희에 따르면 小道는 農事 場圃(장포) 醫術(의술) 占卜(점복)을 가리킨다. 과거의 지식계층이 보기에 그런 일은 小道였을 것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삶의 참 목적과 무관한 작은 기예나 취미를 뜻한다. 必有可觀焉이란 小道에도 인생에 대처하는 볼 만한 점이 있다는 말이다. 致遠은 遠大함을 극도로 다함이니 원대함이란 修身을 통해 治人을 이루는 大業을 가리킨다. 恐은 추측의 어조를 나타낸다. 泥는 진흙에 발이 빠졌듯이 拘碍(구애)되어 통하지 않음이다. 不爲는 小道를 공부하지 않는다는 말로 爲는 學이나 治와 같다.

子夏는 孔門四科 가운데 文學의 범주에서 뛰어난 제자였다. 문학이란 오늘날로 말하면 博學(박학)에 해당한다. 과연 학문에 힘써서 박학했기에 자하는 학문을 좋아하는 자는 나날이 새롭게 공부하고 실천하고 또 배워 알게 되고 실천한 것을 잊지 않는 법이라고 했다.
日知其所亡는 날마다 오늘은 지금까지 알지 못하던 것을 알아간다는 뜻이니 亡(무)는 無와 같다. 月無忘其所能은 달마다 이번 달은 지금까지 능히 실천한 것을 잊지 않는다는 뜻이니 能은 能行이라고 보면 좋다. 실은 ‘날마다 달마다’ 지금까지 ‘알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했던 것’을 알아나가고 또 지금까지 ‘알아서 실천한 것’을 잊지 않는다는 말을 두 개의 구절로 나누어 말한 것이다.

위의 문장에서
자장과 자하의 관점은 달라도 공부에 관한 열정은 어찌 우열을 말하겠는가?

이것은 학문을 하는 방법론이지,

남을 비교하고 나무라는 자대가 되어서는 않될것이다.

방법은 달라도 학문에 옳바른 습관을 갖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을것이다.

이것은 배워서 되기보다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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