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夏는 위정자들이 주의할 점을 지적했는데 무엇보다도 백성의 신임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勞는 백성을 동원하고 부리는 것이다. 근대 이전의 위정자는 백성을 동원해서 길을 수리하고 다리를 놓고 성을 쌓으며 전쟁에 내몰고는 했다. 그런 전제권력하에서도 백성의 신뢰가 가장 중요했으니 현대의 정국 운영에서 국민이나 시민의 신뢰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 未信은 피동의 구문이다. 한문 어법에서는 능동과 피동이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以爲는 ‘∼라고 여긴다’로 주어를 생략했다. (려,여)己는 자기를 虐待(학대)한다는 말이다.
信이란 誠意(성의)가 懇曲(간곡)하여 남이 믿어줌이다. 諫이란 直言과 禮義를 가지고 남을 바로잡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는 사대부가 군주의 잘못을 바로잡는 일을 가리킨다. 未信은 피동의 구문으로, 주어는 군주다. 以爲는 ‘∼라고 여긴다’로 주어를 생략했다. 謗己는 자기를 誹謗(비방)한다는 말이다.
자하는 위정자가 백성을 부리거나 윗사람을 섬길 때 자신의 誠意가 믿음을 산 뒤에야 일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위정자가 백성의 신뢰를 얻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군주의 신뢰를 얻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한비자는 ‘說難(세난)’편을 작성해서 군주 설득의 어려움을 여러 각도에서 말했다.
子夏는 大德과 小德을 구별하여 사람이 먼저 큰 것을 확립하면 작은 일이 간혹 이치에 맞지 않더라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大德은 三綱五常(삼강오상)의 인륜을 말하니 大節(대절)이라고도 한다. 小德은 일상에서의 應待(응대)와 進退(진퇴) 등 작은 예절이니 小節이라고도 한다. 踰는 넘어섬이고, 閑은 출입을 막는 欄(란)이나 檻(함)과 같다.
유학은 大節이든 小節이든 모두 예법과 준칙에 맞아야 한다고 여기므로 子夏의 말은 유학의 가르침과 부합하지 않는 면이 있다. 그래서 옛사람은 ‘말에 폐단이 없지 못하다’고 했다. 자기 자신의 規律(규율)을 위주로 해서 말한다면 자하의 말은 疎漏(소루)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을 관찰하고 사람을 쓸 때 큰 장점만 취하고 작은 결점은 무시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자하의 말도 옳을 듯하다. ‘衛靈公’편에서 공자는 ‘躬自厚而薄責於人(궁자후이박책어인)’하라고 가르쳤다. 자책은 후하게 해도 남에 대한 책망은 적게 해야 할 것이다
위의 문장에서는
배움이 미시적인든 거시적이든
보다 중요한것은 어떻게 써 먹는것이다.
인간 로봇을 만들던 감정까지 더한던 다 필요하고
보다 중요한것은 공익에 유익한 쓰임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산업혁명,전쟁들이 주도세력의 필요에 의하여
만들어 진것을 잊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