君子之道는 군자의 도리로, 자하는 本과 末의 구별이 없이 모두 가르쳐야 한다고 보았다. 孰先傳焉은 반어다. 어느 것을 먼저라 하여 전수하겠는가, 지엽적인 것을 우선시해서 먼저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孰後倦焉도 반어다. 어느 것을 뒤라 하여 가르치길 게을리하겠는가, 근본적인 것을 뒤로 돌려 가르치길 게을리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譬諸草木은 ‘그것을 초목에 비유하면’이다. 비유의 원관념은 가르침에 고정된 순서가 있지는 않지만 어린 사람에게 小節부터 가르쳐 차츰 高遠하고 근본적인 것을 가르쳐나가는 일이다. 區以別矣는 종류에 따라 구별한다는 말이다. 焉可誣也는 반어로, 어찌 속이겠는가, 속일 수 없다는 뜻이다. 속일 誣란 그 위치에 이르지 못한 사람에 대해 마치 이르러 있다고 기만함을 말한다.
子游(자유)가 子夏의 문인들이 세세한 예절은 배우지만 근본 공부는 못했다고 비판하자 자하는 지나치다고 반박을 했다. 그리고 “군자가 사람을 가르치는 도리로 말하면 어느 것을 먼저라 하여 전수하고 어느 것을 뒤라 하여 가르치길 게을리 하겠는가”라 반문하고 초목에 비유하면 종류로 구별하듯이 어린 사람에게는 小節부터 가르쳐 차츰 高遠하고 근본적인 것을 가르쳐나가는 방법을 쓰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자하는 오직 처음과 끝을 구비하고 있고 어린 제자들은 그러한 경지에 있지 않거늘, 만일 어린 제자들에게 점진적인 교육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제자들을 속이는 일이 된다고 했다. 有始有卒은 처음도 있고 끝도 있어서 처음과 끝이 하나로 관통되어 있다는 말이니, 처음은 根本(근본), 끝은 枝末(지말)을 가리킨다. 惟는 唯와 통용한다.
子夏는 벼슬과 배움의 보완에 대해 논했다. 仕는 정치를 담당하는 지위에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優는 餘力(여력)이 있음을 뜻한다. 근대 이전의 지식인은 학문을 하여 벼슬에 나아가 지금까지 배운 것을 실천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다.
子游가 상례에 대해 언급한 말을 기록했다. 子游는 이름이 言偃으로 자유는 字다. 言游라고도 부르며, 孔門十哲의 한 사람이다. 致는 極盡(극진)히 함이다. 而止는 而已와 같아, ‘∼할 뿐이다’의 뜻이다.
子游가 동료 子張을 논평한 말을 실었다. 자장은 행동이 높았지만 성실성이 부족했던 듯하다. 그렇기에 자유는 그를 두고 남이 하기 어려운 일은 잘하지만 仁하지는 못하다고 평가한 것이다.
위 글에서
학문을 하는 방법과 활용면에서 다양한 언급을 하지만 막연하기만 하다.
공자와 동시대에 범려는 어디 거창한 말 하나 전하지 않지만
세상에 있는 수식어을 모두 부쳐도 모자라지만
말이 필요없고 오직 실행으로 보여주는 동서고금에서도 드문 희귀한 인물이 아닌가?
생사을 다해 주군 부차를 패자로 만들고
왕의 성정으로보아 어려울때는 같이해도 왕이된후에는 같이 할 수없다는것을 알고
모든것을 버리고 야반도주한다.
여러나라을 가명을 쓰고 옮겨 다니지만 가는 곳마다 부을 이루고 귀을 주는 것을 마다하고
이룬 부을 모두 나누어주고 떠난다.
아들이 여렷 있었는데
초나라에서 옥사을 치르고 있는 아들이 있어
범려는 장남과 막내중에서 돈궤을 가지고 초나라로 가서 빈천한 거사을 만나 옥사에 있는 아들을 구하는
방법을 상의하고 그분이 시키는 데로하라고 했다.
범려는 두 아들의 성정과 성장 과정을 볼때 장남이 가면 옥사에 있는 아들이 죽어올것이며
막내가 가면 " 살아 올것이란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장남이 죽어도 간다고 하니 생사람 잡을까봐 보내주었는데 결과는 뻔 했다.
그 기준은 믿음(거금이가는데 어찌 오막살이 거사를)이다.
여러면에서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는 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