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철학

깁은 생각

土談 2016. 11. 7. 21:50

현지가 갈 수록 김상태에 대한 원망이 깁어만 가는것 같습니다.
中孚란 괘가 있는데요 믿음 한 가운데 있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을 중심으로 여섯 단계중에 네번째 단계가 현지 가족이 처한 상황이 비슷하지않는가? 생각해봅니다.
月幾望 馬匹 亡 无咎
이 간단한 문구속에는 많은 섭리가 들어가 있습니다. 보는 사람 마다 자신의 세계을 끄집어 내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다양성을 창출하지 아늘까 합니다.
상태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욕심으로 가득 체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출세고 가족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주어진 사항에 맞게 최선을 다한다는 희망의 메시지을 담고 있습니다.

완전한것을 바란다면 늘 불만이고 초라한 자신에 지금의 무덤덤한 모습보다 더 몹쓸 모습으로 변하여 주변인들이 더 피곤하게 변할 것이 두러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馬匹 亡 无咎 마필을 잊어야 허물이없다.
가족에 대하여 너무 미주알 고주알 일일이 관여하지 않는것이 서로가 좋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자신의 일생에서 이 현실에 발목잡혀 가족을 위해서나 사회을 위해서나 좋은 방향을 잃는다면 서로가 어려운 형국을 벗어나기 어렵지 않을까?생각해 봅니다.
자신의 믿음과 가족의 믿음 사회의 믿음이 믿음을 바탕으로 조화을 이루는것을 갈망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조건 믿는 것 보다 이런 현실을 전제로한 현실적인 믿음이 보다 절실한 것이 아닌지요?
이해을 돗구기 위해 다른 측면에서
욕심으로 즉 물질이든 권력이든 가득 체우지말고 늘 겸손하며 대세에 편협하여 붕당 짓지 말아야 허물이 없을것이다.
배우는 자들은 자신의 학문에 만족하지말고 자신의 문파에 줄세우는 짓거리하지말아야 널은 세상을 만날것이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뭔가 뭔지 모르겠다는 말씀에 이해가 갑니다.
우선 내마음도 잘 모르는데 어찌 타인의 마음을 퀘어 보고 알 수가 있겠습니까?
자신 가족 문중 사회 국가가 언제나 혼동 속에서 흐릿했다 뚜렷햇다 반복하면서 전체을 이해하기보다 우선 이기적인 유전자 중심으로 해석하고 딱 손이 안으로 굽는다는 표현 처럼 주관적인 관점으로 보니까? 서로서로 많은 차이을 만들어 그만큼 이야기 거리가 생기는것 같습니다.이 모든 것이 알고 보면 모두 자신의 탓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 보다 가족 문중 사회 국가 탓만 하고 자신의 문제을 잊고 살아갑니다.
우선 저 자신만을 보더라도 3이업종의 노동을(수익) 하고 광대한 관점의 사고을하고 늘 공부에 관심을 두고 있어(돈과 무관)
앞뒤가 맞지않는 일이 어디 한 두개 겠습니까?이런 많은 차이 속에서 평범한 일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순을 우리는 가족 사회 국가에서도 그대로 투영되는것이 대부분입니다.
선생님의 혼동도 마찬가기 일것이고 현재 정치 형태도 자신의 혼란 만큼이나 복잡 다난합니다.
내 자신의 판을 깨지않은 이상 문제는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선생님도 마테오에게 가지않는 이상,

복잡한 국가 현실도 복고로 왕권 아닌 공산,아니면 새로운 판을 만들지않는 이상
평범한 일상처럼 모순을 인정하고 자신을 수정하고 비판하면서 열린 공간을 만드는것이 중요한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 모든것이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문제(선거 똑바로하지)임에도 불구하고 판을 깨지도 못하면서 결국은 그나물에 그밥처럼 하면서 깰 것처럼 해야 자신의 주가가 올라가는 궁중 심리가 작용하여 남의 똥 묻은거만 나무라는 마녀사냥을 모두가 경계해야 된다고 봅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자신 가족 사회 국가)가 맞 물려 작용하는것이 아닌가 합니다.

소설 속에 장마테오가 안개을 걷어 치울지 먹구름을 동반할지?
선생님이 이름을 설정한것인지 아니면 사실그대로인지 ?왜야하면 마테오 리치라는 비슷한 인물이 떠울라 여쭤보는것입니다.
예수회 출신으로 동서양의 가교역활을 휼륭한 성현의 반열에 올려도 부족함이 없는 인물 입니다.
서양인이 동양인 보다 더 동양인 처럼 산분이 아닌가 합니다. 어떤 분들은 공자 보다 더 높이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런것을 알 고 설정하신것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저 자신에게도 소설속에서도 현 정치 속에서도 마테오 리치 같은 인물의 역활을 하여 차이을 줄여가는 일이 벌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장마테오가 마테오리치 처럼 휼륭한 가교 역활을 해야 되는데
아니면 최순실 처럼 되는데
정상적이지 않는 돈가지고 노는 것을 보면 최순실에 가까워 보이는데 어떻습니까?
여호와(아부지)가 까마기(마테오)을 시켜 엘리야(현지)에게 전하라고 했으면 모를까?
마테오가 독자적으로 남의 돈을 좌지우지 했다면 불알 밖에 없던 최태민이가 남의 힘을 이용해 이시대의 최대 사기극을 연출하는 모습과 흡사해 보입니다.어찌 과거에 미미한 일들이 지금과 닮아 있는지?
만약에 이런 일로 끝나지 않는다면 소설에 구성의문제(독자의 의식에 부합하지않는)를 고려해 보아야 하지않을까?생각해봅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에는 꽁짜가 없는데 언젠가는 드러나는 일인데
주인 없는 돈이 날아다니는 것은 많은 차이을 많들어 혼란을 가중하게 만드는데
여기에 대한 현지의 생각하는 관점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흥미롭습니다.
그것이 일용 할 양식에 불과하면 모를까?
감사합니다.

현지의 일방적인 생각,가정의 혼탁함,이해하기어려운 러브스토리,행동과 생각이 이질적인것이
孤女와 닮아있어 이런 것이 한국인의 정서에 내재된것이가 하는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정에 충실했으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아니면 위선이든가?
대부분 남자들이 마누라에게 느껴보지못한 감정을 타인에게 느끼듯 여자도 마찬가지 인가요?
이것을 감정에 성실하지못한것인지?위선인지?순수한 사랑인지?복잡 미묘한데 알수가 없네!
감사합니다.

아직 남편에 대한 살갑지못한 씨쿹등한 표정이 허공에다 속삭이는 사랑 노래와는 대조적입니다.
타인이 홍구을 바라볼때 무관심하길 바라면서 남편은 다른가 봅니다.
인간은 연체 동물처럼 구멍이 9개 나 있습니다.이것을 잘 다루면 천지와내가 일치하여 순조롭지만 그러지 못하면 사특한곳으로 빠져들게 됩니다.그중에 특히 눈 귀 입이 더욱 그러합니다. 좋은 것만 볼려하고 듣기 좋은 말을 원하고 맛있는 것만 찾고 이것은 봐도 못볼 수있고,듣고도 못듣고 먹어도 해로운 마법을 지니고 있을 수있습니다.저도 안 그런 척은 하지만 이런 습성을 버릴 수는 없는것 같습니다.

이런 습성이 주관적일때는 수용하지만 객관적일때는 등한시하는 경향이 동서고금의 흥망성쇠에 그대로 반영되어 흘러갑니다.
지금의 정국의 혼란도 여기서 기인 된것이고
현지도 홍구와 마테오에 대한 열정에 가슴을 열고 눈귀입을 즐겁게 사탕발림 못해주는 상태을 꺼다 놓은 보리 자루 처다 보는 것은 아닌지요. 둘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표현 되면 좋으련만 독자의 상상력에 맞기려는것인지 아니면 궁금증을 더욱 유발하여 반전을 기하려는것인지 작아만져가는 남편의 심리가 어떤 상태일까?
감사합니다.

타다 남은 불씨가 전체 글 속에서는 마테오인줄 알았는데 상태의 였군요.표현이 없었던지라 멍했습니다.
또 시동생에 대한 격한 반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전체 글속에서 미미한것이 이주 강한 이미지로 작용하는 것이 차후에 저지레하는 전주곡인가?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의 서울의 변화을 간략하고 누구나 동경하는 사업의 흐름이 나타나고
그 중심에 김상태가 있다는 것에 작아만져 가는 상태의 심리상태가 궁금한것이 기우(杞憂)였습니다.杞憂는 특정인에게는 상상력으로 갈릴레오 코페니우스 의 태양중심으로 작용하고 그 당시 대중에게는 어리석음이였지만 지금은 누구가 기우인지?

이런 식으로 세상는 늘 고정 불변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흐름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상태가 꽉막힌 사람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잘읽고 직장과 사업의 두마리 토끼을 잡는 능력이 모자에게 무덤덤한것이 무능이 아니라는것을 알 수있게 합니다. 가족 모두가 새로운 동력을 달고 어디까지 어디까지 달릴까? 기대됩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현지)의 인내가 대단합니다.
대부분 그 년이 무엇이라고 잊어버려! 쎄고썬것이 여자야!
욱박지르고 자신이 원하는 데로 끌고가려고 안달을 낼텐데
즉 남들의 경쟁에 우위을 점하려는 흐름으로 돌변 하듯이 말입니다.
플레밍과 처칠 이야기도 현지처럼 지켜본 결과물이 아니라
대중에 떠밀려 그럴뜻하게 꾸며진 이야기라고 합니다.즉 소설인게지요.
그러나 두분이 그당시 아주 중요한 역활을 했고 있을 수있는 일이라고 믿고 싶고 모두에게 귀감이 되는 상징적인 의미을 부여하고 싶은것이 여론이 아닌가 합니다.

자신의 방식과 여론의 방식이 모두 상충하지만 정답은 낼 수없는것 같습니다.
이것을 생각하고 쓰는 홍구의 몫이 아닐까합니다.
처음 홍구라는 이름을 듣고 머라고는 했는데 기역이 가물거리고 대충 연구을 하는 흐름으로 예상한 것이 반쯤은 온 것같습니다.
힉슬리의 신세계에 나오는 과학과 인간사이에 박진감 넘치는 문명의이기와 인간의 고뇌에서 지배 도구로서의 갈등 이런 연구을 홍구가 한다면 흥미을 갖지않을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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