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철학

꼬맨 생각

土談 2016. 12. 18. 22:53

인간지사 塞翁之馬란 말이 떠오름니다.무슨 일이든 동전의 양면처럼 반전이 있는반면에 희비가 공존하게 됩니다.
전편에 모든 가족이 시대의흐름에 순조롭게 일과 사업이 승승장구하는 두 마리토끼을 잡는가운데 사회의 불합리한 대응에 젊은 홍구의 혈기가 어두운 그림자가 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때는 다리가 불편한 것이 감사할 줄 어떻게 알겠습니까?
색옹지마의 반전에 반전을 하는것을 역사에서 쉽게 알 수있습니다.

유럽 동아시아 미국 금융위기의 90년에서 2008년의 흐름에서 많은 추측이 난무합니다.금융의 일정한 패턴에 하나다.
누군가의 배후가 있다.특정 세력이 의도적으로 만든 설이 있어 경제 전문가들이 죽을때가지 연구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예기도 있을지경입니다.영화 인사이드 잡에는 부동산의 파생 상품으로인한 위기로 금융가에서는 어려운가운데 자기들배는 다채우고 개미들을 모두 죽을 지경인데 아무도 책임지는 자가 없는것을 고발하는 내용인데
이런 위기을 대처하고 처리하는 방법은 어느국가 예외없이 흐지부지하는것 같습니다.
저는 이런 양자 구도에 관해서 이해가 되지않아 고민을 많이 했는데. 헉슬러의 신세계을 응용해보니 어럼푸시 감이 오더군요
통치가가 시민을 다스리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술수을 부려 통제하듯이
특정 세력이 금융권과 시민을 함께 위기에 몰아 넣어 자신들의 의도에 쉽게 따르도록 통제하는 수단도 있지않을까?생각해보는것이 더 그럴듯 해보였습니다.그럼 신세계와 인사이드잡이 복합된 더욱 거대한 대작이 새롭게 만들어 져야 하지않을까 합니다.
이런 두마리 토끼을 잡고도 국제적으로 복잡하고 중국은 통제권밖에서 자신의 어리석음을 지켜보는 모양세입니다.
피라미드와 바벨론이 문명을 이루고도 사라지고 로마도 물론이고 인도 무굴제국의 아크바르에서 샤자한의 타지마할의 문명에도  무너지고 진시왕 유방 알렉산더 칭기스칸 나폴레옹 히틀러도 통제 불가능한 힘에도 세락의 길로 접어 드는것을 알 수가 있지요.
모든것을 얻고도 잃는 반면에 모든것을 잃어버리고도 얻는 사례가 공자 석가 예수을 비롯하여 간디 만델라 테레사 한국의 열사들 홍구의 외할매 증조할배같은 분들이 아닐가 생각합니다.현지의 가족도 이런 양면의 경계을 겸허히 고민해야되지않을까요?
감사합니다. 

 

세상은 이이러니합니다.
저는 저레 누워있는 학생들은 희생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내면이 가득 차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빈 수레처럼 말이달리니 소리을 낼 수밖에 없는 형세을 하는것이 아닌가 합니다. 서구의 역사도 루터의 종교개혁이 오갖 기존 세력의 불합리을 주장하지만 자신이 기존세력으로 될때는 약한세력을 다시누르는 모순을 보이고 영국 프랑스도 혁명이라지만 여기서도 물론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지만 그들만의 갖는 평등이지 약자와 무지한 농민들은 배제한것이 위의 학생들과 같이하는듯합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선거권이 주어지고는 이런 용어들이 사라진듯합니다. 잘하나 못하나 자신들의 공동책임논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아미스타드에서 이배을 타고 흑인들이 처참한 물건 취급받으며 노예로 끄려가는 과정에서 저희들도 영국에서 좄겨나와 메이풀라워호을 타고 오던 올챙이시절이 있었을텐데 그것보다 더한 박해을 퍼붙고 그러다 선상의 반란으로 백인을 모두죽이고 단지 향해하는 2명의 인원만 제외하고 아프리카로 가기로했지만 2명의 간괴로 미국연안에도착 흑인들은 죄수로 재판을 받게되어 1심무죄2심 유죄 3심 무죄로 단순 선상의 사건이지만 미국 역사와 경제 통치 전반에 미치는 이해관계가 걸쳐있는 관심사로 많은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바름은 흑인들의 순수한 삶에있는것이지 투쟁이란것에 있는것이 아니라는것을 알 수있듯이
지금 정치을 보더라도 운동권 분들의 역활이 미미한것에서 알 수있는것같습니다.
언론과 투표권이 바르면 쓸데없는 국력낭비는 하지않아도 되지않을까합니다.
홍구도 이런 전반적인 정황를 생각해본다면 자신의 일에 얼마나 충실하는것이 중요한지 알지않을까합니다.
감사합니다.

위의 내용을 읽고 여러가지 일련으 일들에 관해서
공자와 제자인 번지를 통해서 다시 조명해보는것이 그 당시 사회의 관점을 이해하고 고전이 쾌쾌 묵은 것이 아니라 인간 관계에서 현재와 미래을 살펴볼 수있는 살아있는 글이라는것을 알 수있는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단지 읽고도 모르는 분들이 문제이지 고전은 말이 없습니다.우선 공자의 교육관이 눈 높이 교육의 표본임을 제자들의 똑같은 질문에 대하여 처방이 다르게 즉 그들의 능력에 맞게 설명을 해준것에서 알 수있습니다.이해의 차이을 최소화한 것이지요.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에서 사람들이 공자의 제자들의 심성과 능력의 정도의 나타나지않는 부분에 대한 이해 보다 겉으로 들어나는 부분만으로 판단하는것에 대한 역설적으로 다양한 굴레의 형태을 들어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는 시공을 초월하여 같은 맥락을 하고 있습니다.
하루는 번지가 공부만하고 미래가 불투명해보이고 저 보다 못한 분들도 관직에 나가 잘먹고 잘사는 것에 불만이 있어 농사을 짓고 사는 것이 어떤가 싶어 공자에게 묻다가 핀찮을 들은적이 있습니다.요즘 젊은 이들의 현실과 다를봐가 하나도 없습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논쟁은 없지만 서로가 마음이 아픈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루는 덕을 높이는것 사특함을 다스리는 것 미혹함을 분별하는것에 물으니 공자가 반가워서 일을 먼저하고 이을 뒤로하고(본분에 충실), 자신의 악함을 가혹하게 따지고 남의 악함을 공격하지 않고(만델라가 클레르크에게 보여준것 처럼),하루 아침에 분노로 자신을 잊어버리고 그 화가 자신의 부모에게 미치는것 이라고 설명하고 좋은 질문에 칭찬을 아끼지않았습니다.번지는 흥이나서 인을 물으니 공자는 평소 번지가 허접한 분들이 잘먹고 잘사는 것에 불만을 갖는것을 읽고는 사람을 사랑하는것이다.아는 것은 무엇입니까?허니 달달왜우는 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사람을 아는것이다.이해을 못해 다시 물으니 정직한 사람을 위에 두면 부정한 사람도 정직한 사람이 되게 할 수 있다. 홍구같은 현재의 젊은이들의 당면문제와 사회문제 미래문제을 두분의 문답을 통해서 같이 느끼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데 돌출구을 찾을 수 있지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특히 만고의 진리인 남여의 결혼 문제도 공자와 어린왕자에서 알 수있습니다.
남의 악한 점까지 사랑하라.어린왕자가 장미까시을 이해하고 그 자체을 받아들일때 사람의 관계는 자꾸 더해서 완전한것이 아니라 더이상 빼지 말아야 할때 가 이상적이지않을까요.

감사합니다.

 인재 등용 문제는 동서고금에 늘 말성이 많습니다. 없어도 고민, 많아도 시기와 음해로 얼룩이집니다.
인재가 없어 고민 할때 왕 이시여 저같은 사람을 등용시키면 세상 사람들이 모자라는 사람도 등용되는 것을 알면 떼 구름처럼 몰려와 문제을 쉽게 해결 할것입니다.이와 비슷한 예로 말뼤다귀조차 비싸게 사들인다면 우량의 말을 구할 것입니다.
많을때는 진나라 제상인 이사는 동문 수학한 한비자을 함정에 빠트려 알맹이만 빼먹고 죽게만들고
친구사이에 먼저 등용한 친구을 찾아간 친구을 수학 시절 자신 보다 뛰어난 재능을 시기하여 음해하여 양발을 절단하고 좇차냈는데
양발이 없는가운데에서도 칼을갈아 원수을 값아 반전을 보인예도 있습니다.
이 것이 교육의 명암을 보는 듯합니다.
이런 자대에 휘 들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모양은 달라도 이런 일들이 옛날 일만이 아닌듯합니다.
보시는 분들이 한가지만 예기해도 재미있는 열전이 만들어지겠는데.
저 부터 하면 잘나가는 구룹에서 한 분이 너무 잘나가 평소 알고 있던 정보을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을 상의하든 세무팀과 거례하여 자신의 문제을 해결하고 남을 궁지에 빠트리는 경우.검사가 쪼무레기 잡아 놓고 선심쓰는 척하면서 없었던것으로 해 줄테니 누구누구에 대하여 불어 전략으로 손안데고 코풀기하는경우 등등
아무관련이 없는듯하나 스스로 노력하고 순리되로 살아가다보면 피해 가는것이 도리인데
비슷한 나이에 고민하든 일화로 명암을 생각하고 盡人事待天命하면 험한 돌다리도 건너 갈 수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 거들어 보았습니다. 이런 것이 윤리의 문제인데 과학 하는 분들도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것이 인간을 위해 편의성을 많이 제공하지만 한편으론 못쓸 짓을 한것도 사실이여서 드루 생각할 관점을 제기합니다.감사합니다.

재미동포을 미국인으로 보라는 말에 많은 사연이 있는것 같은데 풀어주시면 ?
마지막 문장에 늙었다는 의미를 말한다.
저가 늘 입벗릇 처럼 예기하는 양면성을 이 문장에서 하나로 통했습니다.
이제 막바지을 달리는것 같습니다.
그동안 저의 생각이 짧고 두서없이 올린 글을 따뜻하게 맞아 주셔서 고마왔습니다.
저는 평소 말이 없어 입에서 곰팡이가 필것 같다는 평을 듣습니다.
우연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희생되어가는 상황을 보고
우리가 배워온 역사의 영웅들이 이런 분들이 아닌가 반추해 보다가 댓글을 달게 된것입니다.
또 한 인간의 삶이 세상의 역사와 무관할것 같지만 무늬만 달랐지 시공을 초월해서 하나라고 생각하는 관점에서 세계의 역사속에서 현지의 삶을 투영해 보았습니다.

구비구비 넘어온 산능선을 보고 만감이 교차하는 느낌을 토로하는것이 마음에 심금을 울림니다.

말뫼의 눈물(스웨덴 말뫼의 조선업계 코쿰스가 한국,일본에 밀려 문을 닫으며 대형 크레인을 내놓았는데, 현대중공업이 2003년에 1달러를 주고 샀다. 크레인이 떠나는 날 말뫼 시민들이눈물을 흘렸다)이 용어가 비상과 추락의 대표적인 용어가 생각납니다.

무반주 챌로의 깊은 뜻이 있었군요.두 분께서 험한 역경의 길을 걸어 오시는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홍구도 타국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고 고국으로 회귀하는 과정이 고비고비가 있었을 것입니다.
세분의 인생 여로을 보니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고향으로 돌아 오는데 10년이란 세월 동안 여러 복병을 만나 난간을 극복하고 도전 정신과 모험심이
오디세우스와 무반주첼로의 인물들이 동시에 동화되어 우리들의 일상을 투영하는 것 처럼 느껴
인생에 의미을 찾고자 하는 분들에게 용기와 지혜을 줄 수있는 힘의 원천이 있습니다.

저는 이글을 읽으면서 가상의 인물을 떠올렸습니다.
루쉰의 아큐정전에 주인공이 단순 무식하지만 일상의 의식이 중국인의 기질을 담고 자신에 맞는 옷을 입고 있듯이
무반주첼로에서도 표현이 없지만 즉 현지의 내면 이 한 인간으로 형상화해서 늘 이면에 복선을 깔고 함께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을 정확히 표현 할길은 없으나 우리의 민족성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 처럼 부족한 듯하지만 할것은 하고 참는듯 하지만 알아서하고 상식이 통 할것 같지 않지만 이해하고 있고 답답한 듯하지만 연결되는 부분들이 우리의 심경을 못하면 못한데로 부족하면 부족한 데로 의식을 함께하는것같아 우리의 복장에 어울리느것이 아닌가 ?
그 동안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따듯해지면 봄소풍 한번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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